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랑의 학교/에피소드 (문단 편집) == 명예와 다이아몬드 == || '''배경''' || 1815년 이후의 런던[* [[워털루 전투]]가 1815년 6월.] || || '''출전''' || 실화(?) || || '''애니화''' || X || [[워털루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파티가 [[웰링턴]] [[공작(작위)|공작]] [[아서 웰즐리]]의 저택에서 열리고 있는데, 파티 도중 웰링턴의 다이아몬드 박힌 담뱃갑이 사라졌다. 그래서 참석자 모두의 주머니 검사를 하려고 하자 한 [[중사]]가 검사를 거부하고 나가버렸는데, 웰링턴 공작은 1년 뒤에 다른 옷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발견한다. [[도둑]]이 아니었던 중사가 왜 검사를 거부했는지 알고 싶어 공작이 빈민가에 있는 중사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알게 된 것은 당시 중사의 주머니에 굶주리는 가족들에게 주려고 챙겨 넣은 빵과 고기가 잔뜩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중사는 대영제국 군인의 명예를 위해 주머니 검사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 이 일화는 버전이 매우 다양하다. 국내에는 의심을 받았던 사람이 중사가 아니라 장군, 병사, 사관 등으로 다양하게 나오는 버전이 퍼져 있으며 없어진 물건도 담뱃갑 외에 지갑, 반지 등으로 바뀐다. * 웰링턴 공작 대신 다른 유명한 장군의 이름으로 나오거나 그냥 '옛날에 어느 장군이...' 하는 식으로 나오는 판본도 있으며, 중사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승진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 [[공산주의 유머]]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지만 이쪽은 영 시궁창스러운 결말. 파티에서 시계 혹은 담뱃갑을 잃어버린 스탈린이 [[NKVD]] 수장 베리야에게 도둑을 찾으라고 명령했고, 다음날 베리야가 '용의자 수십 명을 심문했는데 '''[[고문|모두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백했다]]''''고 보고하자 스탈린의 대답은 "아 그거 내 외투 주머니에(혹은 책상 위 서류 더미 사이에) 있더라고."[*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 문서에 기재된 버전은 없어진 물건이 파이프이고, 베리야가 먼저 보고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이 먼저 파이프를 찾고서 "이봐, 용의자들 풀어줘"라고 명령했더니 베리야가 "죄송합니다 각하, 벌써 용의자들 절반은 전부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백했고 '''절반은 죽어서요'''"라고 대답했다는 결말. 어쨌거나 공산주의 유머 버전의 포인트는 정작 없어진 물건은 딴 데 있는데 자기가 범인이라고 자백한 용의자가 '''있다'''는 전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